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와인도 사람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또 병 속에서 숨을 쉰다. 사람이 그 와인을 마시면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다 마신 와인 빈 병을 '시체(un cadavre., 엥 까다브르)'라고 부른다. 와인은 포도나무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달콤한 포도 열매를 맺어, 그 포도로 만든 향기와 색깔 그리고 맛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들이 삶에 승리하는 것과 같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와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와인 음용(drinking)과 와인 시음(tasting)은 다르다. 와인 시음(테이스팅)은 머리로 익혀서 될 문제가 아니다. 와인을 마시는 것(drinking)은 즐거운 일지만, 시음(tasting)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와인을 마시는 일, 즉 drinking은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각을 즐기는 행위이다. 반면, 와인을 시음하는 것, 즉 tasting은 체계와 목적을 향해 이루어지는 의식이다. 마치 미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화풍의 역사, 구도 잡는 법, 색깔 선택하는 법, 재료의 쓰임새 등의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진정한 관계를 와인에서 본다. 물이 물을 잃지 않으면서 불에 자신을 맡기고, 불이 불을 잃지 않으면서 물의 몸을 덥혀준다. 그러면서 물과 불의 신묘한 맛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술이다. 술은 모양은 물인데, 그 속에서 불이 들었다고 해서 '술(수+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술은 '불을 품은 물'이다. 그러한 술 중에 사람이 외부에서 한 방울의 물도 넣지 않고, 포도가 가지고 있던 물만 넣은 것이 와인이다. 그래서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이 여성이라면, 불은 남성이다. 와인은 물과 불의 결합이니,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것이다. 한문으로는 좋아할 '호'자가 된다. 그래서 와인을 마시면 좋은가 보다.
그런데 그 와인 숙성되면 더 자신의 실력을 뽐낸다. 그래 언젠가 써 본 시를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성숙함에 대하여/박수소리
연구원 화학 박사도
와인의 숙성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생화학이라면서.
인문운동가도
인간의 성숙함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나이에 상관 없이 사람마다 성숙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명하라면,
사는 동안 쓴맛, 단맛 다 봤기 때문에 느껴지는 성숙함이 아니라,
힘찬 기운과 여유가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일 거다.
그런 사람은 스치는 게 많아 가슴에 자국이 많은 사람이다.
그게 진짜 성숙함이다.
가슴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오늘은 프랑스의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에서 나오는 명품 화이트 와인 <뫼르쏘> 이야기를 한다. 뫼르쏘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소설 주인공이며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이방인』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그 주인공 뫼르쏘는 무엇을 하는 것과 무엇을 하지 않는 것 사이에 아무런 가치의 높낮이가 없다. 그의 마음 속에는 우선순위가 없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가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다. 살인에 대한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 말로 인간에 의해 인간을 향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의 이유를 '너무' 알려고 한다. 그래서 뫼르쏘는 안간 힘을 써서 이 사회에 일부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 세상'에 속하기 위해 때로는 온갖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듯, 자발적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
뫼르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이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이다. 그는 죽음이 삶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냉혹한 부조리의 시선 속에서 죽음을 자발적으로 택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재판에서의 사형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속이고 공동체에 억지로 편입되어 생존을 구걸하는 대신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지만 자신이 '온전한 나'일 수 있는 너무도 좁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자유와 해방을 꿈꾸며 속물적 삶의 안정감을 박차고 공동체의 울타리 바깥으로 뛰쳐나가야 한다면, 나는 고독한 뫼르쏘처럼 세상에 반항하겠다. 그러니까 뫼르쏘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소설 주인공이며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알베르 까뮈는 『이방인』을 쓰면서 이 와인을 자주 마시고 좋아해서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을 이 와인 이름으로 하였다고 한다.
오늘 와인의 라벨에는 천지인(天地人)이라는 한자가 보인다. 이 와인은 한국 여성이 주인인 부르고뉴 네고시앙에서 출시한 와인이기 때문이다. 와인을 공부하며 가장 어려운 용어가 '떼루아(terroir)'이다. 언뜻 보아도 프랑스어의 땅이라는 단어인 'La terre'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어 표현에 '똥베 파르 떼르(tomber par terre)'가 있다. '바닥으로 나자빠지다'란 말이다. 그냥 'par terre'는 '바닥에'란 뜻이다. 레슬링에서 바닥에 눕는 벌칙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게 우리 나라에 와서 "빠떼루"가 된 것이다.
'떼루아'라는 와인 용어를 이야기하려 다가 샛길로 빠졌다. ‘테루아’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렵다. '떼루아'는 포도밭 하나하나를 특징 지워 구별하게 만드는 자연요소(하늘과 땅)와 인적 요소가 합쳐진 의미이다. 와인 산지인 포도밭의 위치, 토질, 기후 등 자연적 요소와 그곳에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의 역사,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기술, 장인정신 등의 인적 요소를 모두 통틀어 말하는 개념이 '떼루아'이다. 이걸 쉽게 표현하면 한자로 천지인(天地人)이다.
같은 품종이라도 토양과 기후, 자연 환경, 재배 방법, 포도원의 위치 및 지형학적 조건 등이 달라지면 와인의 개성도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떼루아'란 토양의 성질이나 구조, 포도밭의 경사도나 방향, 일조량, 온도, 강수량 등이 모두 포함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포도밭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 없다. 포도밭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말한다.
이 '떼루아'가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영양이 많은 밭에서 자라게 되면 가지와 잎이 너무 많이 자라게 되어 포도 알맹이로 가야 할 양분이 적어져 포도가 빈약해지고, 뿌리도 두꺼워져 길게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생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살만 찌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척박한 땅에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포도일수록 좋은 맛의 와인이 된다. 왜냐하면 포도는 메마르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에서 좋은 품질의 포도 열매를 만들기 때문이다. 척박하고 메마른 밭에서 포도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찾아 땅 속 깊이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그 결과 여러 지층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여 복잡한 느낌의 맛을 지니게 된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박수소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