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1. 인문운동가의 인문일기: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2021년 9월 25일)
추석과 추분이 지나자, 아침 저녁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낮의 기온은 높다. 어젯밤은 이상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 젊다는 증거이다. 약간 억울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하면 싸울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아직도 위도일손(爲道日損)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道)는 매일 비우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48장에 나오는 말이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이 말을 번역하면, "배움이라 함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라 함은 날마다 던다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게 된다. 무위란 하지 못하는 것(불위)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 한다면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다." 도를 닦는 것은 나날이 지식 또는 분별을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비움이 지극해지면, 평화로워 지고 무위하여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지식은 밖에서 오고, 도는 안에서 온다.''
이 가을과 함께,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내며 살고 싶다. 여기서 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비우며 살자. 욕심내지 말자. 그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덜어내고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고, 무위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위가 아니라 무불위(되지 않는 일)라는 효과를 기대하는 거였다.
어쨌든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롭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러다 결국은 더 이상 맑은 물이 샘솟지 않게 된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자꾸 비워야 영혼이 맑아진다.
그런데 쉽진 않다. 선의로 베풀면, 뒤로 당한다. 그래 어제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속상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느리게, 편안하게, 천천히 생을 만끽하며 그냥 시시하게 살리라.
원래 감정에는 진폭이 있는 거다. 그 폭을 줄이는 일이 '깨어 있음'이다. '감정의 요동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처음 겪는 일일수록 그 요동이 심하다. 겪어보지 않은 일일수록 더 두려워하고, 요동이 심하다. 그러니까 나는 큰 일을 겪어 보아 어지간한 일들에서 감정의 요동이 크지 않다. 오늘 친구 집에 밤을 주으러 가, 만난 들에 핀 가을 코스모스 꽃에게 말해본다.
가을이 오면/홍수희
나무야
너처럼 가벼워지면
나무야
너처럼 헐벗겨지면
덕지덕지 자라난
슬픔의 비늘
쓰디쓰게
온통 떨구고 나면
이 세상
넓은 캔버스 위에
단풍 빛으로 붉게
물감을 개어
내 님 얼굴 고스란히
그려보겠네
나무야
너처럼만 투명해지면
오늘은 토요일로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이번 주부터는 스페인 와인 여행을 하려 한다. 우리는 스페인 와인하면, 주정강화 와인인 셰리(sherry)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셰리는 국내 와인 생산량의 약 7%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스틸와인(still wine, 비발포성 와인)과 까바(Cava)라고 하는 스파틀링 와인(발포성 와인)이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은 생산량을 기준으로 할 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3번째의 와인 생산국이다. 와인 수출 규모면에서도 역시 위의 두 나라 다음에 자리 잡고 있다. 포도밭 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넓지만 날씨가 건조하고 관개가 금지되어 있는 탓으로 재배 면적당 포도 수확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스페인의 유명한 와인 산지는 리오하(Rioja), 나바라(Navarra), 뻬네데스(Penedès), 헤레스(Jerez),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라 만차(la Mancha)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루에다(Rueda)와 또로(Toro) 등이 있다.
(1) 리오하(Rioja)-프랑스 보르도의 기술을 들여온 산지로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최고 등급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스페인의 와인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은 19세기 중엽 무렵이다. 마르께스 데 리스깔(Marqués de Riscal)이 프랑스 보르도로 추방되어 있는 동안 그곳에서 프랑스의 고급와인을 생산하는 방법을 배워 리호아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양조 방식인 오크 숙성 방식이 리오하를 중심으로 도입되었다. 기자였던 데 리스깔 후작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을 발견한 그는 1860년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 프랑스 인 와인제조업자 장 삐노를 영입하여 스페인에 새로운 와인의 시대를 열었다. 그 이후 1895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와인 대회에서 외국 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해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스페인 와인 역사에 매우 중요한 획을 그었다. 그 이후 많은 와이너리에서 리스깔의 병을 모방하였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색의 망으로 병을 덮게 된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포도밭 대부분이 포도나무 뿌리 진딧물인 필록세라 해충에 의해 황폐화되자,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리호아(Rioja)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와인 제조방법을 전수받은 스페인 와인은 품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 후부터 스페인의 리오하 지역은 보르도 스타일의 고급 레드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페인 와인의 자부심 리오하가 나오는 리오하 와인 산지는 라 리오하(la Rioja), 나바라(Navarra) 및 바스크(Basque) 지방의 일부를 포괄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 동북부 지방, 에브로 강 계곡(Ebro River Valley)에 자리 잡고 있다. 포도밭은 나지막한 구릉을 끼고 붉은 황토 토양이 즐비한 벌판에 발달되어 있다. 여기서 재배되는 포도품종은 레드와인에 뗌쁘라니요(Tempranillo)가 대표적이고, 그 외 가르나차(Garnacha) 그리고 마쑤엘로(Mazuelo)가 있다.
1991년 이 지역이 스페인 유일의 최상급 와인 등급인 DOCa 지역이다. 리오하 DOCa 지역은 다시 3개 지역으로 나뉜다. 리오하 알따(Rioja Alta), 리오하 알라베싸(Rioja Alavesa), 리오하 바하(Rioja Baja)이다. 앞의 두 지역을 최고로 꼽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는 긴 역사를 지닌 마르께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 자본력의 위세를 지닌 이베루스(Iverus) 그룹의 이시오스(Ysios) 등이 있다. 1992년 리오하의 모든 와인들은 반드시 병입되어 유통하도록 규제되고 벌크의 판매는 금지 되어 있다.
(2) 뻬네데스(Penedès) 지역-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 까바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남서쪽 해안을 따라 형성된 지역으로 스페인 발포성 와인인 카바로 유명하다. 까바의 주원료가 되는 포도품종은 파레야다(Parellada)이다. 까바의 85%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샴페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DO의 등급을 받고 있다. 가격이 적당하고 품질이 높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많이 마시고 있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와이너리인 미구엘 또레스(Miguel Torres)와 잔 레온(Jean léon)이 있다. 일찍부터 스페인 와인의 수출 역사가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미구엘 또레스는 프랑스나 미국 등 와인 산지를 방문해 가장 먼저 스테인리스 스틸 양조 통을 도입했다. 그러면서 스페인 와인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3) 헤레스(Jerez) 지역 - 셰리(Sherry)의 산지: 스페인 남부 대서양 연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정강화 와인(15,5°C~18°C)인 셰리가 나오는 지역이다. 이곳이 셰리의 고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이웃에 있는 까디스 항, 훌륭한 기후 조건 그리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전통적인 양조의 방법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헤레스가 프랑스어로는 세레스(Xérèz)로 쓰여 지고 나아가 영어식으로 변해 셰리(Sherry)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셰리의 라벨에는 이 세 가지 명칭이 함께 쓰이는 일이 많다. Jerez-Xérèz-Sherry. 이 셰리 와인은 백악질(Chalk)의 토양에서 재배되는 팔로미노(Palomino)라는 포도품종으로 만들어지고 주로 식전주(aperitif)로 많이 마시며 그 강건함과 섬세한 맛이 아주 독특하다. 셰리를 만드는 자세한 내용은 뒤의 Tip에서 다루었다.
(4)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 <유니코(Unico)>의 고향 리오하와 마드리드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으로 최근 들어 최상품 와인 산지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스페인의 <로마네 꽁띠>라 부리는 ‘보데가스 베가 시실리아(Bodegas Vega Sicilia)’로 인해 이 지역의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레드 와인만 생산되고 화이트와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크 통에서 7년, 병에서 2년간 숙성 시킨다는 최상의 와인 <우니코(Unico)>가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레드 와인만 생산되고 화이트와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까베르네 쏘비뇽을 사용해 만들고 있다. 고 다이애나와 찰스의 1981년 결혼식 피로연에 채택되었던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 명가 '베가 시실리아‘의 와인이다. 어느 빈티지를 마셔도 소비자들이 마실 만한 맛에 이르렀을 때 내 보낸다는 명가의 철칙으로 만들어지는 명품중의 명품이다. 보르도 특급 와인도 숙성 시킨 지 3년 만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무려 10년을 숙성 시킨 이후 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가격은 약 70만~80만 원대이다.
(5) 라만차(la Mancha): 스페인 와인의 반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테이블 와인이 대부분이다.
(6) 루에다(Rueda)와 또로(Toro) - 최근에 떠오르는 와인 산지 : 리베라 델 두에로에서 30㎞ 떨어진 루에다에는 현재 유럽 최고의 화이트와인 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소비뇽 블랑은 물론이고 스페인 토종인 베르데호(Verdejo)를 이용한 상큼한 화이트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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