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3.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6월 19일)
요즈음 TV의 콘셉트는 수다 또는 잡담이다. 일상의 희로애락이다. 그만큼 우리가 일상을 나눌 이웃이 없다는 뜻이다. 수다 떨 상대가 없으니 남들이 떠는 수다를 구경하는 것이다. 삶이 주체적이지 못하면, 우리는 구경꾼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늘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바뀐다. 그것을 우리는 '인격적 성장'이라 한다. 나는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실제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부 구경만 하고 있다. 그래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삶의 시간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배움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힘'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든다. '익힘'은 그것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내 것으로 만드는 육체적 과정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어떤 강의를 듣거나 누군가 로부터 배우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배운 것을 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익힘'을 반복하여야만, 우리는 '자신만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두고 '자유'라고 불렀다. 그러니 배움의 목적은 결국 '자유'를 위한 것이다. 사실 자유는 그냥 주워 지지 않는다. 내가 자유자재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진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배워 법칙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면, 그 때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는 누구인 가를 쉼 없이 또 성찰 해야 한다. 왜? 뭐 좀 할 줄 안다면, 우리 인간은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네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무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른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알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를 배려하고 나를 돕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곧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절제를 할 줄 안다. 즉 멈출 줄 알고, 현실을 잘 직시하고, 무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제의 한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것만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지혜롭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
요약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이 세 가지, 즉 지혜, 아니 나란 누구인 가를 깨닫고, 이어서 절제, 용기를 갖는 것이 삶을 '잘 살 줄 아는 방법인 것 같다. 내 마음 속에, '내가 만든' 이런 원칙들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절제로 내가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더 배워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정공법을 좋아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건 내가 감내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인 경우에 그런 것이고, 언제나 정면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생 앞에서 게처럼 슬금슬금 비껴가며 살고 있다. 지금은 동네 찻집에 그리스 음악을 듣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이 우리의 정서에 맞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대사가 우리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게/권대웅
바다는 언제나 정면인 것이어서
이름 모를 해안하고도 작은 갯벌
비껴서 가는 것들의 슬픔을 나는 알고 있지
언제나 바다는 정면으로 오는 것이어서
작은 갯벌 하고도
힘없는 모래 그늘.
이젠 토요일마다 하는 와인 이야기를 한다. 지난 토요일에 이어 오늘은 와인의 향의 평가하는 요령을 공유한다. 와인 전문가가 아닌 일반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의 향을 식별하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향만을 알아내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와인에서 발산되는 향의 종류가 1000여 가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제 사람의 후각을 통해 감지되는 향은 100여 개정도라고 한다.
와인의 향을 잘 식별하고 표현하려면, 일상적으로 먹는 과일이나 야채 특유의 향을 확실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기억된 향을 가지고 와인의 향을 평가할 때 참고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흔히 접하지 못하는 과일이나 야채 등을 만나면 그 향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도록 노력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더 관심이 있다면, 와인 향 샘플 키트("le Nez du Vin", 한국 말로 해석하면, "와인의 코")를 구입한 후, 반복해서 향을 맡음으로써 향들을 기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뇌의 기억 창고에 향이 많이 저장돼 있어야만 와인을 마실 때 유용하게 꺼내 쓸 수 있다. 와인의 향을 잘 식별하려면 반드시 그 향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와인의 향을 사람의 ‘코(norse, 프랑스어로는 le nez)’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와인을 마시면서 ‘big norse(큰 코)’라고 말하면, 그 와인이 매우 자극적이고 강한 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작은 코’란 표현을 썼다면, 향이 뚜렷하지 못하고 약하게 느껴지는 경우이다.
와인의 향은 두 경로를 통해 후각 구근에 전달된다. 하나는 콧구멍으로 와인 잔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향이 전달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입 안의 온기에 의해 휘발성이 된 와인의 향이 목구멍에서 후각 구근으로 연결되는 코의 내부통로를 통해 전달된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콧구멍과 ‘후비관’을 통해 느껴진 향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느낌을 주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후비관’을 통해 전달된 향이 더 지배적이다. 다음 그림을 보면 잘 이해가 된다.
와인의 향은 포도품종, 산지별 토양과 기후, 빈티지, 양조방법, 효모의 종류, 저장 및 숙성조건 등에 따라 각각 그 개성을 달리한다. 그러나 와인의 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포도품종이다. 그리고 와인의 향은 와인의 고향인 대지의 흙과 그 곳의 태양이 빚어낸 대자연의 향기이다. 와인의 그 향을 통해서 우리는 그 곳의 과일과 꽃 그리고 풀들을 만나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는 것은 곧 향기를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인의 향은 와인의 생명이다. 와인의 향을 묘사하는 용어로는 아로마(Aroma)와 부께(Bouquet)가 있다.
아로마는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르면 즉각적으로 올라오는 1차향을 말한다. 와인의 원료로 쓰인 포도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향기이다. 예를 들면 과일 향, 야채 향, 꽃 향기 향, 풀잎 향, 약초 향, 흙냄새같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향이다.
부께는 와인이 공기와 접촉해서 올라오는 복합적인 향이다. 부께는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일어나는 와인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포도즙에 있는 설탕성분이 알코올로 변하는 발효과정에서 많은 부께가 생긴다. 그리고 오크통 숙성을 거친 와인에 배어 있는 바닐라, 구운 토스트 등의 향도 부께이다. 일반적으로 발효 후에 정제와 여과, 저장 과정 등을 거쳐 병입된 와인은 아로마가 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로마는 약해지며, 부께가 점차 와인의 향을 지배하게 되면서 과일 향을 잃게 된다. 마른 잎, 홍차, 버섯, 부엽토, 담배, 손질된 가죽 냄새, 버섯, 건초, 말린 과일 등 좀 더 복합적이며 다양하게 숙성된 향이 와인의 부께이다. 이런 훈련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아로마 필을 자주 살펴보면 좋다.
초보자는 와인의 향을 감별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와인의 향인 아로마를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로바 바퀴(Aroma Wheel)’라는 것이 위의 그림이다. 이것은 사람의 후각을 통해 감지될 수 있는 100여 개의 향을 대, 중, 소그룹으로 나누어 이를 하나의 원에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와인을 마실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과일향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아로마 바퀴’를 활용하는 법을 살펴본다. 와인에서 과일향이 느껴지면, 그 과일 향을 다시 감귤 향, 딸기 향, 나무열매과일 향, 열대 과일 향, 마른 과일 향 등으로 구분해 본다. 또 다시 감귤 향은 그레이프 푸르트와 레몬, 딸기 향은 검은 딸기(블랙베리), 나무딸기(레즈베리), 일반 딸기, 까막까치밥나무(블랙커런트), 나무열매과일 향은 체리, 살구, 복숭아, 사과, 열대과일 향은 파인애플, 메론, 바나나, 마른과일 향은 딸기잼, 건포도, 말린 자두, 무화과 등으로 각각 세분화된다.
와인의 향을 감상하지 않고 와인을 바로 마시는 것은 와인의 반을 버리는 것과 같다. ‘아로마 바퀴’를 참고하면서 다양하고 복잡 미묘한 와인의 향을 감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은 색깔과 향 그리고 맛을 최대한 감상하고 느끼는 데 있다. 이 중에 감상하기가 제일 어려운 것이 향을 감상하는 것이다. 향은 매우 종류도 많고, 그 속성이 복잡 미묘할 뿐만 아니라 공기와 접촉 시간, 마시는 온도, 잔을 소용돌이치는 정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지배적으로 감지되는 향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와인의 향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와인 향 샘플모임(le nez du vin)>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장 르누아르(Jean Lenoir)에 의하면, ‘와인은 포도나무로부터 직접 향의 유산을 물려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까베르네 쏘비뇽의 경우 숙성이 덜 된 와인에서는 블랙커런트나 나무딸기 등 주로 붉은 색 과일 향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나 숙성이 되면서 후추나 생강 등의 자극적인 향이 첨가되며 송로버섯(truffle)의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와 함께 오크통 숙성을 할 경우에는 구운 빵, 연기, 초콜릿 냄새 등이 추가로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에 따라, 와인의 향을 잘 감상하려면 각 포도품종별 향을 기억해 두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와인의 향을 잘 식별하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데 주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집중적으로 마셔보고, 그 다음으로 서로 다른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비교 시음하고, 그 다음으로는 한 포도품종이지만 산지가 다른 와인들을 비교하며 시음하면 와인의 향을 감상하는 능력이 커질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전문가적인 와인의 향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공유한다. 와인의 향을 평가하고 표현하는 기준은 향의 강도(intensity), 선명성(clarity), 품질(quality)로 나누어 표현하고 평가한다. 향의 강도는 말 그대로 발산되는 향기의 양과 지속력이 기준이 된다.
• 향의 강도는 ‘약하다, 강렬하다, 파워풀 하다’같이 표현한다.
• 향의 선명성은 ‘향이 탁하다, 선명하다’로 표현한다.
• 향이 미흡하다고 느낄 때는 ‘밀폐된, 닫혀 있는, 무엇인가 결여 된’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 향의 품질은 ‘기분 좋은 향이다, 노블하다, 섬세하다, 기분 나쁜 향이 난다, 거칠다’ 등 다양하다.
• 아로마 향이 풍부할 때는 ‘향이 진한 와인’, ‘향이 탐스러운 와인’ 등으로 표현한다.
• 오크 통 속에서 숙성된 와인, 특히 장기 숙성된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바닐라 향’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오크 통에 의해 생기는 향이다.
• 같은 향이라 하더라도 ‘과일 향’, ‘향신료 향’, ‘꽃과 같은 향‘, 꿀 같은 향’, ‘식물의 향’ 등의 표현으로 판별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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