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다시 지난 9월에 쓴 글을 소환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ker-Ross)가 1969년에 쓴 『죽음과 죽어감』에서 사람이 죽음을 선고 받고 이를 인지하기 까지의 과정을 다음의 5단계로 구분 지었다. "부인(denial)-분노(anger)-협상(bargaining)-우울(depression)-수용(acceptance)"이다. 이를 '죽음의 5단계'라 하지만, '분노의 5단계'라고도 한다. 이 모델은 사람이 죽음과 같은 엄청난 상실을 겪을 때 보이는 심리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도 이런 심리적 단계를 우리에게 주었다.
1.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이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창궐하여 파탄내지 않을 거라는 부정
2. 국내 확진자 급증에 따른 분노
3. 이후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과의 타협하고 협상
4. 전 세계를 잠식한 인류사적 전염병의 창궐에 대한 우울
5. 이젠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즉 대면(컨택트, contact)의 세계가 비대면(언택트, untact)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수용한다.
요즈음 핫한 바이러스 전문가인 이재갑 교수도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병에 반응하는 단계가 있어요. 처음엔 화를 내죠. 그 다음엔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하고요. 그 다음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마침내 인정하고 수용하게 돼요. 전 국민이 그 단계를 겪고 있어요." 위에서 말한 사람이 죽음을 선고 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5단계와 같다. 그래 이재갑 교수의 다음 말에도 나는 동의한다.
"역설적이지만, 체념하면 답이 나와요, 한 달 간다면 이대로 버티잖아요. 2~3년 간다는 걸 알면, 그제야 인정하고 무언가를 하죠.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버티지 말고 바꾸라고 해요, 밀레니엄은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시작됐다고요,"
흥미로운 것은 일상이 바뀌면 욕망이 바뀌고, 욕망이 바뀌면 일상도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언텍트'가 아니라, '언컨택트-비 대면'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만든 트렌드가 아니라, 이미 확장되고 있던 트렌드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편한 단절이 오히려 일상화된 밀레니얼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다. 특히 나도 그랬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식당엔 1인용 혼밥 좌석이 늘어나 있었고, 실제 '혼밥'하는 사람들이 쉽게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매장엔 말 걸지 않는 서비스가 인기였다. 이미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과 장례식장이 곳곳에 생겨나 있었고, 유럽에선 퇴근 이후 상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었다.
지금 우리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과잉 컨택트를 지나 적정 컨택트로 가는 중요한 분기점에 처해 있다.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는 ‘언컨택트’가 좋은 것은 우리가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선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언컨택트'가 가속화될수록 수평성, 투명성이 높아져 실력자와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줄여서 ‘언택트(Untact)'라 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넌컨택트(noncontact)'이다. 우리가 ‘언컨택트(Uncontact)’라고 하면, 그건 ‘접속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접속하는 방법을 바꾼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진화 코드일 수 있다. ‘빨리빨리'와 ‘끈끈함'이 이종 교배 된 한국 사회에서 '언컨택트'의 변화가 놀라운 현상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가 티핑 포인트를 맞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비 대면'이라 말이 싫다. 차라리 '안전 대면', '위생 대면' 등이 좋다고 본다. 그래 나는 '골목텍트'란 말을 만들었다. COVID-19 위기 속에서 우리가 새로 발견한 것은 집, 일상, 거리, 동네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네의 발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 나는 동네 분들과 멋진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골목텍트'를 한 것이다. 물론 참석자는 전부 5명이었다, 나와 딸을 빼면 셋이었다. 각자 준비한 음식에 와인을 거의 각 1병씩 마셨다. 혼자 마시는 와인은 싫다. 그래서 함께 이렇게 마신다. 마신 후에는 "교정적 정서체험 '이 이루어진다. 혼자 보는 무지개는 심심하다. 비갠 하늘, 무지개가 걸리면 우리는 그 흥분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찾는다.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세상에 붙잡아 주는 것도,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고 성장하게 되는 것도 따뜻한 관계의 경험을 통해서다. 이러한 관계의 경험을 '교정적 정서체험'이라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와인 이야기하려다 여기까지 왔다. 지난 주에 이어 Châteauneuf-du-Pape(샤또뇌프 뒤 빠쁘) 이야기를 한 번 더 한다. 오늘 읽을 와인은 내가 직접 지난 주에 마셔 본 와인이다.
위 사진의 와인 읽기를 한다.
(1) CELLIER DES PRINCES(셀리에 데 프랭스): 굳히 해석하면 '왕자들의 와인 저장고'가 되겠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을 그만 두고 프랑스 요리와 함께 하는 와인 레스토랑을 우녕했었는데, 그 때 레스토랑 이름이 '셀리에'였다. 이 이름은 와인 생산 양조장 이름이다.
(2) 2018: 빈티지이다.
(3) CHATEAUNEUF DU PAPE: 와이 이름이다. 1925년 설립된 이 양조장은 샤또뇌프 뒤 빠쁘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 중 가장 유명한 양조장이다. 그리고 이 와인의 특성을 프랑스어로 설명하고 있다.
(4) 주인이 직접 병입했다는 말이 맨 아래 적혀 있다.
백라벨을 보면,
(1) AOC 일등급 와인을 표기하고 있다.
(2) 이 와인의 특성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이 와인 밀도가 높게 빨간 색을 띈다고 했다. 특히 robe라는 프랑스어가 재미난 말이다. '드레스'라는 뜻인데, 잔을 수월링할 때 치맛자락 보인다고 하여 이 말을 사용하는 데, 그냥 영어 컬러(색)이라고 보면 된다. 향, 즉 아로마 블랙 계열의 과일 향이 난다고 말한다. 블랙베리 류를 말한다. 그리고 약간의 양념이 섞인 향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맛('입'이라는 말의 프랑스 la bouche를 사용한다)이 풍성하고 폭이 넓다고 말한다.
이글을 읽으시며, 혹시 와인이 있다면, 한 잔 마시면서, 다음에 공유하는 시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 바란다.
삼류들/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마친 삼류가 무대를 내려서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삼류의 얼굴에 꽃물이 든다
삼류는 남몰래 자신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 열렬한 박수갈채는 노래 솜씨보다 월등한
그녀의 미모에게 보낸 것인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 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날이 올 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을 크게 마셨다 내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먼. 산. 바. 라. 기.]님의 덧붙임이 좋아 이 시를 택했다. "시인은 일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삼류들을 조롱하지만 실제는 일류라 부르는 인간들의 부도덕성, 그리고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사다리 구조의 사회에서는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일류들과 거기에 오르고자 하는 이류, 삼류들의 희망 없는 버둥거림이 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삼류들은 자신들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련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전쟁터에 나간다. 그리고 일류들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감지덕지한다. 그것이 악한 사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줄도, 일류들의 음모인 줄도 눈치 채지 못한다. 삼류는 그래서 삼류다. 그들은 가짜 일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니체가 말하는 ‘시장의 파리떼’이고 속물들이다. 세상은 소수의 교활한 일류들과 다수의 어리석은 삼류들로 되어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란 말을 믿고 싶다. 인간을 어찌 일류와 삼류로 나눌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격은 달라진다. 한 인간의 기품은 많이 배웠다고, 또는 많이 가졌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앞서 가려는 것도 좋고,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자리에 있던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잃지 않고 살고 싶다."
샤또뇌프 뒤 빠쁘는 이 와인이 나온 산지 이름이고, 동시에 이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이 와인은 "교황의 와인"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와인 이름에 다음과 같이 교황이 들어간다. 나는 교황이란 망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교종이라 해야 하지 않나? 샤또 뇌프 뒤 빠쁘(Châteauneuf du Pape), 이 와인은 이름이 길어 기억하거나 발음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우선 이 와인의 복잡한 이름의 뜻부터 살펴본다. ‘샤또’는 ‘성’이란 뜻이고, ‘뇌프’는 ‘새로운’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영화 <뽕뇌프의 여인>에서 나오는 ‘뇌프’도 같은 뜻이다. [‘뽕(pont)’은 다리란 뜻이니까 한국말로 하면 ‘새 다리’란 뜻의 빠리 센느 강에 맨 처음으로 놓인 다리를 말한다.] ‘뒤(du)’는 영어로 ‘of’라는 뜻의 전치사와 정관사가 축약된 관사이다. 끝으로 ‘빠쁘’는 ‘교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와인을 한국말로 하면 ‘교황의 새로운 성’이 된다. 론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이름난 와인 산지이다. 아비뇽 북쪽 약 15㎞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레드와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화이트 와인도 있다.
샤또뇌프 뒤 빠쁘는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만들어낸 프랑스인들이 매우 자랑스러워 하는 프랑스 ‘명품’ 와인 중에 하나이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실패로 로마 교황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자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1305년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를 강력하게 간섭하면서, 프랑스 왕이 교황을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게 프랑스 아비뇽에 체류 시킨다. 이것이 “아비뇽의 유수”이다. 아비뇽에 새로운 교황청이 등장하자 와인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어 탄생한 와인이 바로 ‘샤또뇌프 뒤 빠쁘’ 와인 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와인에서 보는 것처럼, 이 와인 병에 교황의 갑옷 무늬가 새겨진다. 이것이 쉽게 다른 와인 병들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다.
이 와인이 나오는 지역은 교황청이 있었던 아비뇽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프랑스 남부 론(Rhône)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이다. 이 와인의 뛰어난 맛과 향은 바로 이 지역의 기후 조건과 특이한 환경 때문이다. 이 지역은 교황들이 여름 별장을 마련했을 정도로 시원한 기후 조건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언뜻 보면 포도밭이 굵은 돌로 뒤덮여 있어 포도나무가 자라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을 뒤덮고 있는 바위 수준에 육박하는 둥글고 굵은 자갈들은 낮에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강렬한 햇볕을 빨아들여 품고 있다가, 해가 진 뒤부터 밤까지는 이 열을 다시 포도나무에게 다시 방출하여 포도의 숙성을 돕는다. 그래서 와인의 색이 짙고, 향과 맛이 풍부하다. 그리고 그 돌이 밭의 수분을 지켜주어, 와인에서 흙 향이 난다. 포도밭 사진을 구글에서 얻어왔다.
이어지는 와인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이재무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