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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11일)

정말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부여에 갔다. 물론 강의 하기 위해 그냥 스치듯이 부여를 다녀갔던 적은 있다. 부여(夫餘, 扶餘)는 내가 어린 시절에 자란 공주(公州)와 가까운 도시로 백제(百濟)라는 역사적 맥락과 연결된 도시라 내 고향 같다. 어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대국가로는 최초로 약 1500년 전에 세워진 '계획 신도시'라 했다. 백제 역사 강의시간에 PPT 자료를 사진 찍은 거다.

강사가 주장했던 오늘날 K-문화가 세계 주류 문화에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에서 시작된 문화가 축적된 거라는 점을 나도 강력하게 인정한다. 문화의 힘은 대단하다. 문화로 먼저 교류를 틀면, 정서적으로 친밀도가 높아져서 다른 분야의 교류로 잘 이어지게 된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문화 예술은 사회통합, 나아가, 사상과 이념을 아우르는 데 긍정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면, 차이와 이질감을 해소하는데 그것이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문화이다.  그래 문화의 두께가 두꺼워야 사회가 두터워진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다." 김구 선생님의 말이다. 자연과학, 나라의 부강함이 이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 행복, 정의, 자유, 사랑 같은 덕목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의 높이가 바로 문화적이고,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님에 의하면, 문화적이 되면 남을 모방하지 않는 힘이 발휘된다고 한다. 즉 독립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독립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여야 한다. 이 판단은 철학적 시선에서 나온다. 그 시선은 남들이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꿈'이다. 그러니까 꿈이 없으면 종속적인 사람을 살게 된다. "노예가 노예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어느 쪽의 쇠사슬이 더 빛나는지./어느 쪽의 쇠사슬이 더 무거운지.//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Amiri Baraka, 미국 극작가)

이런 꿈을 가지려면, 시대의식을 포착하고, 포착된 시대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폐쇄적인 시선을 벗어나 시대를 들여다 보고, 거기서 문제를 발견하려고 덥빈다. 어떻게? 대다수가 공유하는 관념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그런 호기심이 발동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독립된 주체, "단독자"(들뢰즈)라고 한다.

단독자는 대답하는 일보다 질문부터 시작한다.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신의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이다. 반면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한다. 대답과 질문은 다른 차원이다.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다시 말하면, 대답은 기능의 차원이지만, 질문은 인격적인 문제이다.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이라는 내면의 인격적 활동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도식이 가능하다. 질문-독립적 주체-궁금증과 호기심-상상력과 창의력-시대에 대한 책임성-관념적 포착-장르-선도력(리더십)-선진국. 선진국에서는 "너 참 독특하다 Your are so unique."라고 칭찬한다. 이러한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근거로 자기 삶을 꾸리면 자기 주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만 생각하지 않는 윤리적인 삶이 필요하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더 좋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해 집단지성에 기여해야 한다. 집단 지성을 높이는 방법은 우리가 사회 발전 방향에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뒤에서 비평만 하는 것은 멈출 일이다.

부끄러운 계산/김광규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는
가까운 벗 나의
온갖 부끄러움 속속들이 아는 친구
또 한 명이 떠나갔다 그렇다면
나의 부끄러움 그만큼 가려지고
가려진 만큼 줄어들었나
아니다
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몫까지
나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
내 몫의 부끄러움만 오히려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기억의 핏줄 속을 흐르며
눈감아도 망막에 떠오르는
침묵해도 귓속에 들려오는 그리고
지워버릴 수 없는
부끄러움이 속으로 쌓여
나이테를 늘리며
하루 또 하루
나를 살아가게 하는가

오늘은 토요일로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오늘은 칠레 와인 여행을 떠난다. 칠레 와인이 세계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시장의 질서와 메커니즘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틈새를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이 언제나 명성과 값비싼 그랑 크뤼(Grand Cru)의 위력을 앞세우고, 이탈리아 와인도 전통만을 내세우고, 캘리포니아 와인이 새 귀족으로 발돋움하려는 동안 칠레 와인은 그 틈새를 이용해 대단한 약진을 보이고 있다.

칠레 와인의 장점은 넉넉한 맛과 마시기 수월한 이점, 강건함과 묵직함, 탄닌이 짜임새 있게 잘 어우러져 훌륭한 조화를 이뤄내는 풀바디(full body)한 보르도적인 와인 스타일에다 큰 부담이 없는 값이다. 게다가 기존 와인 공급 시장의 폐쇄적이고 귀족적인 성향이 소비자의 매력을 등지게 할 때, 칠레는 외국 자본을 때맞춰 유치하고, 양조 기술의 혁신으로 질 좋은 프리미엄급 와인을 내놓고 있다. 프랑스의 바롱 필립 드 로췰드(<알마비바(Almavivia)>, 에라주리즈(Errazuriz)와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와의 자본 결합(<세냐(Seňa)>) 등이 칠레 와인 산업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데 공헌했다. 와인 양조는 이제 국경을 초월해 가고 있다. 높은 기술력을 맞이한 새 토지에서 어떤 와인이 나올 것인지 아주 흥미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남위 30도의 작열하는 태양, 안데스 산맥의 청정 지하수를 빨아들여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칠레의 와인 양조는 16세기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때부터 시작되어, 19세기에는 유럽 산 포도 묘목을 대량으로 들여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나라는 기후와 토양이 포도 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 세계에 퍼진 필록세라(포도나무 뿌리 진딧물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칠레뿐이었기 때문에 양조 자가 유럽으로부터 대거 이주해 와서 유럽의 전통적인 양조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다른 와인 생산 국가들이 주로 자연적인 조건과 싸웠다면, 칠레는 주로 정치적인 문제가 와인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와인 산업이 커져만 가는 칠레에 위기감을 느낀 스페인 정복자자들의 방해, 1902년 알코올 규제법의 제정, 1938년 와인 생산량을 규제하는 법이 원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후에는 정부의 수입 규제 조치로 와인 양조의 기술 발전을 위한 장비와 기계 수입이 안 되었다. 게다가 살바도르 아옌데(Savador Allende)의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급진적인 토지개혁 아래 많은 포도원이 사라지었다. 그러나 1985년을 기점으로 칠레의 와인산업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위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칠레 와인의 장점은 와인의 맛이 넉넉하고 어느 정도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알맞은 밸런스를 보임으로서 굳이 탓할 만한 빌미를 주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채식을 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쉽게 어울린다. 게다가 칠레 와인은 늘 태양이 쬐이는 따뜻한 남국의 기온으로 인해 북반구의 유럽 여러 나라들의 와인에 비해 탄닌이 보다 유순하고 부드러워 한결 마시기가 수월한 것이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와인도 여러 가지 결점을 지니고 있다. 칠레의 모든 와인들이 단조롭고 투박한 맛을 보인다. 오랜 기간 칠레 와인을 마시면 쉽사리 싫증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런 면은서 칠레 와인이 가진 숙명적인 한계이다. 두 번째 결점은 섬세하고 복합적인 맛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구세계의 수준 높은 와인들과 비교된다. 다음 토요일에 칠레 와인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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