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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만 마시는 술이 아니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매주 토요일마다 와인 이야기 하기로 했던 사실을 잊었다. 아마도 몇 일간 계속되는 연휴와  코로나-19로 사람 만나는 일을 자제하라는 수동적인 격리가 시간 가는 걸 잊게 했나 보다. 그래 오늘 아침에 지난 주에 못한 부르고뉴 와인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을의 문턱이다. 김보일 시인이 시가 생각난다. "무엇에 지칠 만큼 지쳐보고서 입맛을 바꾸어야지/무엇을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거 저거 집적대는 것은/자연이 젓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초록이 지쳐 단풍든다는 말이 자연의 이치를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말은 아닐지/영과후진盈科後進, 물은 웅덩이를 다 채우고 흘러간다던가/지칠 만큼 여름이었고, 벌레들은 제 목청을 다해 울었으니/이제 가을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가을일 것이다." 이런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와인은 삐노 누아르(Pinot Noir) 포도 품종 와인이다.

삐노 누아르 포도는 재배하기가 무척 까다롭다고 한다. 껍질이 얇아 열과 해충에 매우 약하다. 그래 포도 재배자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라 말한다. 그러나 재배에 성공하면, 선비같이 고고한 품격의 와인을 만들어 준다. 이 품종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잘 자란다. 그래 프랑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 100% 삐노 누아르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매우 비싼 와인으로 팔린다. 영어권 사람들은 '부르고뉴'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힘들어, '버건디(Burgundy)'라 한다. 버건디 칼러(색)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다. 우리는 흔히 이를 '대추색'이라 부른다.

와인은 아름다운 색깔과 함께 어우러진 다양한 향과 맛을 지닌 하나의 예술품이다. 교회의 의식이나 축제에서 우리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해오고 있는 술이다. 와인은 그 색깔이 주는 매력으로 인해 보통 보석에 비유하곤 한다. 레드와인은 루비, 화이트와인은 금이나 호박으로 비유한다. 실제로 “와인을 마시는 것은 보석을 마시는 것이다”란 말도 있다.

와인과 음식은 단순히 취하고 배를 부르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즐거움을 준다. 와인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만 마시는 술이 아니다. 로마 시대에는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리고 원정지에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마시던 술이었다. 그러면 오늘날 와인을 마셔야 만하는 이유들을 열 가지로 나열해 본다.
- 음식과 함께 마시면서 식욕을 촉진하고 소화를 돕는다. 게다가 칼슘이나 비타민 등의 무기질 흡수를 도우며, 이뇨작용까지도 한다.
- 알칼리성 음료이기 때문에 산성체질을 중화 시킨다. 즉 노화 방지, 좋은 피부 관리, 즉 ‘젊음의 묘약’이다. 체내의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효과 때문이다.
- 항암 효과가 있다. 포도 속에 들어 있는 항 곰팡이 성 물질인 레스베라트롤 등의 폴리페놀 류가 와인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항암 효과 작용을 한다.
- 심장질환을 예방 시켜 준다. 포도 속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과 카테킨 등이 혈관을 청소 시켜 주어 심근 경색이나 뇌출혈 등의 심장관계 질환을 억제 시켜 준다.
- 스트레스나 긴장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의 음주 욕구를 건강하게 해결해 준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긴장도 완화되며 진정효과를 갖는다.
- 인간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준다.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와인은 급격하게 취하게 하지 않으므로 대화용으로 적당하다. 그러므로 결과 중심의 음주문화를 없애고 과정 중심의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 삶에 휴식과 여유를 준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와인과 함께 자신만의 성찰의 시간이나 사랑하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인성을 회복 시켜 준다. 다양한 색과 향 그리고 맛을 지닌 와인과 같은 예술품을 자주 접하면 인성이 좀 더 부드러워지고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
-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준다. 와인은 ‘원샷’이나 잔을 주고받으며 돌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주량에 따라 적당히 마실 수 있다.

깊어 가는 가을 밤에 와인 한 잔 하면서, 오늘 공유하는 시, <시월의 이야기>를 소리 내 읽어본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은 라벨 읽기가 어렵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의 와인 알베르 비쇼(Albert Bichot) 네고시앙의 즈브레이 샹베르땡(gevrey-Chambertin) 와인이다. 부르고뉴>꼬뜨 도르>꼬뜨 드 뉘이>즈브레이 샹베르땡 으로 좁아지는 마을 이름 와인이다. 거기다 밭 이름이 라벨에 표기되는 1등급 와인이다.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 등급 이야기는 다음 주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계획이다.

시월 이야기/이향지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 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와인 공부를 하면서 제 일 어려운 부르고뉴 지역 와인 이야기를 공유한다. 지난 주 9월 26일에 쓴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에서 이어진다. 파리의 동남쪽 디종(Dijon)에서 시작하여 리용(Lyon) 방향으로 손(Saône)강 계곡의 산비탈을 따라 길이 50㎞와 넓이 20㎞에 걸쳐 뻗어 있는 꼬뜨 도르(Côte d'Or) 지역이 부르고뉴 와인의 가장 중요한 생산지이다.

이 지역은 다시 꼬뜨 드 뉘이(Côte de Nuits)와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으로 나뉜다. 보르도에 비해 면적은 좁으나 보르도와는 달리 한 가지 와인에 단일 품종의 포도만을 사용한다. 보르도 산 와인은 2∼3 종류의 포도를 섞어서 와인을 만들어 단순하지 않게 복합적이고 섬세해서 ‘여성적인 와인’이라면,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관계로 단순하고 강건해서 ‘남성적인 와인’이라고 불린다. 다시 말하면,  보르도 레드 와인이 블랜딩을 통해 복합적인 향과 맛으로 여성적이며 중년층에 인기가 있다면, 부르고뉴 레드와인은 피노 누아르의 단일 품종으로 양조하기 때문에 남성적이고 젊은 층이 더 좋아한다. 부르고뉴 와인 중에서 레드 와인은 ‘삐노 누아르’, 화이트와인으로는 ‘샤르도네’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품종이다.

보르도 와인과 또 하나의 다른 차이가 있다면, 보르도 와인의 경우 우리가 보통 산지라고 부르는 것은 포도원과 동일한 것으로 한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인 반면, 부르고뉴 와인의 경우에는 산지가 여러 포도원의 집합체로서 보통 여러 소유주에 속해 있다. 부르고뉴의 포도원은 아주 작은 단위(Climat)로 쪼개져 있어 마치 체스 판을 연상케 한다. 조금 크다는 포도원은 소유주가 여러 명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끌로 드 부조>라는 이름의 보도 밭은 소유주가 80여명이나 된다. 이는 프랑스 혁명 때 귀족이나 교회 소속의 포도원을 농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데서 기인한다. 이후 자식들에게 상속되면서 포도원이 더욱 쪼개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어지는 부르고뉴 와인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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