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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와인 이야기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2021년 10월 2일)

나는 사람들이 앉는 자세나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좀 안다. 그런데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대중 앞에서 몸 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행동거지를 조심할 법도 한데, 내 사전에 그런 법, 아니 규칙 따위는 없다는 식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더 나아가, 말(言)도 그렇다. 한 사람의 말을 보면, 또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그 사람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나는 그의 말들을 무시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오마이 뉴스>의 오인영 기자의 글을 보고,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

내가 분노해 <인문일기>에 언급하는 것은 '인문학 부수론' 때문이다. 문맥이 있으니, 그 한 발언만 문제삼는 것이 아닌가 해서, 문제의 발언을 보니, 대학의 존재 이유가 "실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란 주장 다음에 나온 다음이었다.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는 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 뒤 "그러나 인문학을, 여러분이 무슨 지금 세상에서는 공학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를 찾는 데 굉장히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원하니까, 그러면 인문학이라는 거는,그런 걸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학생을 갖다가, 4년 뭐 대학원 과정까지 그렇게, 그건 소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느냐, 그래서 그런, 기업에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교육 당국이 추진하려고 그러면 반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발언을 분석하면, 우선 생각의 두서가 없고, 마침표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몇 가지 발언을 정리해 보면 이런 말이다. (1) 대학의 역할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 유용한 인재를 양산하는 거다. (2) 기업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인문학은 취업에 유용한 공부를 하다가 짬이 날 때 부차적으로 하면 된다. (4) 그러므로 인문학 공부라는 건 많은 사람,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다. (5) 인문학은 소수의 전공자만으로도 충분하다. (6) 기존의 임문 분야 학과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통폐합해야 한다. (7) 그러나 내부 반발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을 슬렁슬렁해도 되는 취미-교양이나 짬 나면 접하는 특강쯤으로 경시한다. 인문학을 오로지 경제적 유용상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게다가 대학과 학문 일반의 존재 이유까지도 기업의 필요에서 찾았다. 인문학은 종교,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인류학 등의 분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무지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더 무서운 것은 편견이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무지로 인한 자기 기만과 편견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오인영 기자의 다음 문장으로 그게 무섭다는 걸 다시 뼈저리게 느낀다. "마녀 사냥은 마녀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마녀를 식별할 줄 안다고 과신한 자들이 저지른 범죄이다." 편견을 낳는 원인은 대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이다. (1)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 부족, (2) 상상력 부족, (3) 오만과 자만심, (4) 공감 능력의 부족, (5) 삶의 내, 외부 균형 상실이다.

뿐만 아니라, 편견, 기만 그리고 착각과 같은 잘못된 생각-앎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그걸 잘 말한 사람이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없는 지식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된 지식 비우기'를 강조했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신이 실제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거짓된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이라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알아차리도록 도왔다. 올바른 생각-앎은 '깨달은 사람'이 안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깨달음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이런 게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다가 잠시 들려서 엿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효용가치로 보면, 인문학은 정치적 출세, 경제적 성공,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은 바로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언젠가 김병욱 교수님의 글을 적어 놓은 적이 있다. 그걸 좀 공유한다. "문학은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하나 주지 못한다." (앙드레 지드) 그러나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추문을 퍼트림으로써 이 비정한 세계의 가혹한 현실을 폭로하고 선의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김병욱) 인문학은 그 '쓸데 없음'이 마련해준 자유를 통해 실용주의에 매인 욕망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그 실용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김현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문학의 효율성은 그 쓸모를 거부하는 데서 얻는 자유와 해방의 귀중함에 있음을 말하였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연구와 실험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거기서 자유와 해방을 맛본다. 그거 순진한 열정의 무용한 노력이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대체로 무용한 이론적 발견이 문명적 실용으로 변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은 '쓸데없음'의 인식을 통해 쓸모의 의미를 살피고 현실을 반성하며 거기서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인문정신과 윤리적 관용을 키우며 인간을 아름다운 가치의 세계로 고양한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쓸모 없는 놀이의 추구와 그것들을 향한 열정이 인간의 자유로움과 거기서 얻는 해방감을 누리며 목적과 의무, 현실과 실용에 구속된 우리의 정신과 삶의 현장을 다시 바라보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환하게 열어 놓는다. 과학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인문학과 같다. 과학 기술도 쓸모 있는 것만 하면 재미가 없다.

토요일은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인데, 어제 <오마이 뉴스>의 오인영 기자의 글을 읽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문제를 잘 지적해 준 오 기자에게 감사하다.

오늘은 지난 주 토요일에 이어, 스페인 와인 여행을 한다. 그 전에 오늘의 시를 한편 같이 읽는다. 가을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시가 릴케의 <가을날>을 공유한다.

가을날/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막바지의 열매들을 영글게 하시고,
하루 이틀만 남극의 햇빛을 베푸시어,
영근 포도 송이가 더 온전하게 무르익게 하시고,
짙은 포도주 속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내일날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낙엽이 떨어져 뒹굴면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이어 스페인 와인 이야기를 한다. 스페인도 프랑스 와인 등급인 AOC를 본따 DO(Denominaciónes de Origen, 원산지지정) 제도를 도입해 와인의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DO를 라벨에 표기할 수 있는 지역은 정부가 지정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 전국에 53개의 DO 지역이 지정돼 있다. 이것은 스페인 전 포도 산지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AOC와 같은 성격이다. 그러나 2003년에 새롭게 생긴 등급으로 단일 포도원에 주어진다. 이를 VdP(Vino de Pago)라 한다.  파고(pago)란 싱글 빈야드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특급 와인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DOCa(Denominaciónes de Origen Calificada)이다. 현재 리오하 지역이 유일하게 지정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DOCG와 유사한 면이 있다. 4개의 등급 중에서 제일 낮은 와인은 비노 데 메사(Vino de Mesa)이고, 그 위의 등급이 프랑스의 벵 드 뻬이(Vin de pays)에 해당하는 것으로 특정한 생산 지역에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면 되는 비노 꼬마르깔(Vino Comarcal), 그리고 그 위의 등급으로 프랑스의 VDQS와 같은 수준으로 DO급 와인보다 한 단계 낮은 와인 품계가 비노 데 라 띠에라(Vino de la Tierra)이다.

게다가 스페인의 와인 관련법은 숙성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따라서 스페인 와인의 라벨에는 숙성조건이 표기되기 때문에 와인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스페인 와인은 유럽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셀러 숙성을 거치는 와인으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마시기 좋은 시기에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칠레도 이 규칙을 따르고 있다. 너무 복잡해 다시 잘 정리하여 공유한다. 다음 사진들은 <아베크헬렌>이란 분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1) VdP(Vino de Pago): 2003년에 새롭게 생긴 등급으로 단일 포도원에 주어진다. 파고(pago)란 싱글 빈야드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특급 와인과 유사하다.

(2) DOCa(Denominaciónes de Origen Calificada):  스페인 최상급 와인의 산지를 표시하는 것이다. 리오하 지역이 유일하게 이 호칭이 주어져 있다.

(3) DO(Denominaciónes de Origen) 지정된 와인 산지 표시이다. 프랑스 AOC급 와인이 나는 산지로서 현재 69개의 DO가 있으며 다음과 같이 숙성 조건에 따라 다르게 표기된다.

① 비노 호벤(Vino Joven): 당해연도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양조한 후 그 이듬 해 판매한다. 즉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시는 와인이다. 호벤은 young, 젊은이란 뜻이다. <신 크리안싸(Sin Crianza)>라고도 한다.
② 비노 데 크리안싸(Vino De Crianza): 레드와인의 경우 오크통 숙성기간 6개월을 포함하여 총 2년간의 숙성을 한 와인이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수확한 포도를 원료로 레드와인을 만들 경우 비노 데 크리안싸는 2년 동안 숙성을 거쳐 2003년부터 출하될 수 있다. 화이트와 로제 와인은 오크통 숙성기간은 6개월로 같으나 숙성기간은 총 1년이다.
③ 레세르바(Reserva): 레드와인의 경우 오크통 숙성기간 1년을 포함 총 3년간의 숙성을 거쳐야만 출하가 허가된다. 화이트나 로제와인은 오크통 숙성기간 6개월을 포함 총 2년이다.
④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 레드와인의 경우 오크통 2년을 포함 총 5년간 숙성을 거쳐야만 라벨에 표기할 수 있다. 화이트와 로제 와인은 오크통 숙성기간 6개월을 포함 총 4년이다.

(4) VCIG(비노 데 깔리다드 콘 인디카시온 제오그라피칼, Vino de Calidad Con Infication Geografical): 2003년에 새롭게 생긴 등급이다. 프랑스의 VDQS에 해당한다.

(5) VdLT(비노 데 라 띠에라, Vino de la Tierra): DO급 와인보다 한 단계 낮은 와인 등급이다. 프랑스의 VDQS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VdM(비노 데 메사, Vino de Mesa): 프랑스의 vin de table과 같은 수준이다. 일상적으로 마시는 와인으로 스페인 와인 연간 생산량의 75%를 점하고 있다.

제도상 일정한 숙성기간을 거쳐야만 숙성에 관한 이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빈티지가 오래되었어도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페인 와인이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와인은 병입 숙성이 길기 때문에 이미 시판되는 와인은 가장 시음하기 좋을 때 출시됨으로 주저하지 않고 마실 수 있다.

스페인은 레드와인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 프랑스의 그르나슈와 같은 품종인 가르나차 틴타(Garnacha Tinta), 화이트 와인의 아이렌(Airen), 까바의 주 원료가 되는 파레야다(Pareillada), 셰리를 빚는 빨로미노(Palomino) 등의 고유 품종을 재배하나, 최근 들어 까베르네 쏘비뇽, 피노 누아르 등 프랑스산 포도품종을 들여와 고급와인을 생산하는데 많이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레드와인을 빚는데 쓰이는 최상의 포도품종인 템쁘라니요는 이름도 틴타 피노(Tina Fino), 틴타 데 파이스(Tinta des Pais), 틴타 데 또로(Tinta de Toro) 등으로 포도 산지에 따라 달리 불리고 있다. 흔히 스페인의 까베르네 소비뇽이라고도 한다. 특히 리오하 지방의 와인에 사용되는 것이 템프라니요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처럼 섬세한 맛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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