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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와인 속에 진리가 있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를 '와인, 술 파는 인문운동가' 라 했더니, 지인이 더 쉽게 '술 파는 철학자'로 고쳐준다. 내가 와인을 알게 되고, 전문가로 밥 벌이를 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 그래 나는 나를 '와인 팔며 마시는 인문운동가'이다.

좋은 와인 한 모금은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왜? 만족스러운 느낌이나 맛 그리고 즐거움과 재미를 주면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지성이나 이성을 굳고, 경직되게 하는 일을 막아준다. 이런 여가와 놀이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재미가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심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부단히 들락거리는 중심이어야 한다.  여가나 놀이마저 중심으로 건축되어 도달해야 할 것, 발견되어야 할 것,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면 이것도 삶의 재앙이다. 고전을 읽으며, 철학적 시선, 지성적인 힘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난 딸의 와인 숍 & 바에서 즐겁고 재미 있는 생활을 한다. 그 일이 나의 밥줄이다. 그 일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들락거림을 위해, 아침마다 글쓰기와 공부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장사하기의 들락거림을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와인 한 가지를 선택하여, 와인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그래 오늘 아침 시는 프랑스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의 <와인의 영혼>이란 시를 공유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라는 시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이다. 이 시집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힌 시집이다.  오늘 아침 시에는 포도의 탄생과 와인 제조 과정, 숙성된 와인을 즐기는 이들의 내력이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포도밭 일꾼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 흘리며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부터 지친 노동 끝에 마시는 와인의 향과 맛까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저녁 식탁에서 와인 잔을 바라보는 아내의 볼은 벌써 발그레하다. 아들의 얼굴에도 건강한 혈색이 돌고 온몸에 힘이 솟는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 또한 붉게 상기된다. 이렇게 해서 포도는 "‘영원한 파종자가 뿌린 진귀한 씨앗"이 되고, 시인의 마음속에서 신을 향해 피어나는 꽃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의 시로 재탄생한다.

와인은 이런 맛과 향과 문학과 예술의 빛깔을 함께 품고 있다. 『보물섬』을 쓴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그래서 “와인은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했다. 와인 애호가들이 건배사로 자주 인용하는 말에도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와인의 영혼/샤를르 보들레르

어느 날 저녁, 와인의 영혼이 술병 속에서 노래하였다.
"사람아, 오 불우한 자여, 유리의 감옥 속에,
진홍의 밀납 속에 갇혀서, 내 그대 향해
목청 높여 부르노라, 빛과 우정이 넘치는 노래를!

나는 알고 있나니, 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 주려면,
저 불타는 언덕배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땀과 찌는 듯한 태양이 있어야 하는가를,
그러나 나는 헛되거나 해롭지 않으리,

노동에 지친 한 사내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릴 때면 내 기쁨 한량없기에
그의 뜨거운 가슴속은 정다운 무덤이 되어
내 써늘한 지하실보다 한결 더 아늑하기에.

그대 귀에 들리는가 일요일날의 저 우렁찬 후렴들이
그리고 내 펄떡 이는 가슴속에서 희망이 수런대는 소리가?
두 팔꿈치 탁자 위에 고이고 소매를 걷어붙여라,
그리고 나를 찬양하라 그러면 마음 흐뭇하리라:

기쁨에 넘친 그대 아내의 두 눈에 나는 불을 붙이리라,
그대 아들에게는 힘과 혈색을 돌려주고
인생의 그 가녀린 선수를 위하여 나는 투사의
근육을 다져주는 기름이 되리라.        

내 그대 가슴속으로 떨어져, 신이 드시는 식물성 양식,
영원한 파종자가 뿌린 진귀한 씨앗이 되리라,
우리들의 사랑에서 시가 움터서
한 송이 귀한 꽃처럼 신을 향해 뿜어 오르도록!"

오늘은 그 1회로 <샤또 딸보(Chateau Talbot)>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 와인은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급와인이다. 이름이 쉬워서 일까? 프랑스 와인 이름이 두 자로 <샤또 딸보>처럼 쉬운 건 드물다. 그리고 이 와인에는 긴 스토리가 들어 있다. 와인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그 전쟁의 이야기 속에 오늘 소개하는 와인이 자리한다.

프랑스와 영국이 지금의 보르도 지방을 두고 치른 100년간에 걸친 전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백년전쟁'이다. 문제는 1137년 프랑스의 왕이던 루이7세와 프랑스 남서부에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아키텐의 알리에노르가 결혼하면서, 결혼 조건에 이 땅들을 왕실 직영으로 편입시키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던 것에서 비롯된다. 후에 알리에노르는 루이 7세와 결별하고(당시 30세) 앙주의 백작이자 노르망디의 공작인 앙리(당시 17세)와 재혼하면서 지참금으로 자기 소유의 땅을 몽땅 가지고 가버리는데, 이 앙리가 2년 후에 영국의 왕, 헨리2세가 된다. 1154년 헨리2세가 왕위를 계승받게 되었을 때, 그는 본래 갖고 있던 앙주 땅과 함께 노르망디, 브르따뉴, 리무쟁, 가스꼬뉴, 아키텐까지 프랑스 왕국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백년 전쟁의 싹이 되었다.  

하지만 보르도가 영국에 속했던 이 시기에 보르도 와인은 영국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와인의 명산지로 명성을 쌓게 되었다. 완벽한 기후와 토양 조건에 무역항으로서 의 보르도 항까지 갖춘 보르도가 와인 재배와 판매에 최적지로서 유럽에 입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백년전쟁의 끝에서 우리는 프랑스 편의 잔 다르크와 영국군의 톨벗(딸보) 장군을 만나게 된다. 백년전쟁 말기,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으로 진군한다. 이교도의 손에서 프랑스를 구해내 자며 진군하는 잔 다르크는 비록 적이지만 희생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단신으로 적진에 달려가 이렇게 명령한다. “나는 피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냥 물러가라.” 이때 이 말을 듣고 고뇌하면서 퇴각했던 영국 장군이 바로 톨벗, 프랑스어 식으로 발음하면 딸보이다. 그는 까스티옹(Castillon) 전투에 참여해 1453년 7월 17일 끝내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는데, 샤또 딸보는 이 영국군 장군 톨벗을 기려서 와인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프랑스의 상징인 와인에, 그것도 백 년씩이나 싸운 적장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딸보 장군의 면모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그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샤또 딸보가 프랑스 와인 등급 중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e)’에 들어있는 명품 와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샤또 딸보>에 대한 엄청난 인기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다른 와인들에 비해, 와인 이름이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 와인으로,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샤또 딸보>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다고 할 정도이다. 그 인기 비결은 바로 짧고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운 상표 이름 때문이다. 보통의 와인 이름은 길기도 길 뿐더러 사실 발음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니 아직까지는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만 들어도 바로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바로 <샤또 딸보>였던 것이다. 1970년대, 국내 대기업들이 전 세계로 진출하던 시절, 종합상사 수출 담당 직원들은 전 세계 바이어들을 상대로 비즈니스 접대를 해야 했다. 적당히 아는 척도 하게 해주면서, 고급 와인임에도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고, 그런대로 마실 만하며 무엇보다도 발음하기 쉬운 <샤또 딸보>는 당시 우리 수출 역군들의 비즈니스 식탁에서 훌륭한 역할을 잘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동안 <샤또 딸보>의 인기에 불을 붙인 사람이 전 한국 축구 국가 대표 감독이었던 히딩크이다. 월드컵 4강의 위업을 달성한 2002년 열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막 16강에 진출했을 때, 그는 “오늘밤은 와인 한잔 마시고 푹 쉬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그날 밤 그가 마신 와인이 <샤또 딸보 98년산>이었다고 한다. 그는 <샤또 딸보>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이 와인은 터프 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가진 히딩크의 이미지 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샤또 딸보>는 보르도의 중추적인 네고시앙(Négociant:와인 도매상) 중 하나인 꼬르디에(Cordier) 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보르도의 메독 지역 중 쎙-쥴리앙에 있는 <샤또 딸보>는 1855년 그랑 크뤼 분류에서 4등급으로 책정되었다. 국내에서는 너무 흔히 보이는 탓에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오해와 달리 꽤 수준 높은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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