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포도주를 영어로 하면, 와인(wine)이다. 프랑스어로는 뱅(vin), 이탈리아어로는 비노(Vino), 포르투갈어로는 비뉴(vinho)라 한다. 근데, "와인 한 잔 할까요?"와 "포도주 한 잔 할까요?"는 느낌이 다르다. 왜 그럴까? 와인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제부터 4일 동안 대전에서는 제7회 '아시아와인트로피'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최대 와인 품평회를 하고 있다. 이 품평회는 OIV(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Vine and Wine, 국제와인기구)의 승인, 감독 아래 대전 마케팅공사와 독일와인마케팅(세계 5대 와인 품평회 중 하나인 베를린트로피 주최)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올해는 35개 국가에서 출품한 4384병의 와인을 26개국에서 온 127명의 와인 전문가들이 심사를 한다. 나는 첫해부터 한 번도 안 빠지고, 올해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는 함께 진행하는 Asia Wine Conference에서 "와인의 가치와 즐기는 방법"에 대해 8월 23일(금) 오후 15시에 강의도 한다. 영광이다.
심사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한 테이블에 6명이 앉아, 하루에 40여 병의 와인을 심사한다. 작년부터 태블릿(Tablet)을 사용하여 더 빨라지고, 정확해 졌다. 그리고 종이를 사용하지 않으니, 환경 보호에도 크게 일조한다. 내 테이블은 프랑스어로 소통한다. 조지아(그루지아)에서 온 여자분, 프랑스 남자 두 명, 그리고 프랑스에서 공부한 한국 여자분 두 분 그리고 나이다. 각자 점수를 주면, 최고점과 최저점을 빼고, 4명 점수의 평균을 내어 82점 이상이면 실버(은메달), 85점 이상이면 골드(금메달), 92점 이상이면 그랜드 골드를 준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이다. 그리고 전체 출품 와인의 30%까지 입상할 수 있다.
이런 권위 있는 와인 품평회를 대전에서 7회까지 끌어왔다는 것은 자랑거리이다. 특히 동유럽 와인 메이커들에게 대전은 매우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 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와인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잘 알아 보지 않고, 와인도 생산되지 않는 대전에서 무슨 이런 행사를 하느냐고 얕보거나 비난한다.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와인은 포도의 껍질에 자생하는 효모(yeast)가 포도 속의 포도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화학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화학적 과정을 우리는 '발효'라고 부른다. ‘발효과학’의 위대함을 우리는 김치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발효가 일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만남에서도 중요한 것이 ‘발효’이다. 타자와 나의 분리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를 타자에게 완전히 던지거나, 타자를 받아들여 나의 세계가 새롭게 확장되는 두터운 세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와인 1병의 성분을 분석하면, 수분이 85%정도로 대부분이고 알코올이 9%~13%이며 나머지는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페놀 물질이 여러 개 결합된 것)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와인 알코올이 16%가 넘는 것은 거의 없다. 거칠게 말해서, 와인을 양조하다 보면, 효모가 자신이 만든 알코올이 16%가 약간 넘으면 활동을 중단한다. 자기가 만든 알코올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대 알코올 함량은 약 16% 정도이다. 그 이상의 알코올이 들어 있는 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따라서 16% 이하의 술을 마시면 우리 몸이 잘 받아들인다. 실제로 와인을 마시면 쉽게 몸에 퍼져 취기를 느낀다. 그러다가 바로 깬다. 그러나 와인을 각자의 주량보다 많이 마시면, 우리 몸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특히 와인을 희석식 소주를 마시듯이 많이 마시면, 그 다음 날 침대에서 못 일어난다. 그래서 ‘Wine을 많이 마시면 와인(臥人)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은 와인의 어원이 한문에서 나왔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영어 와인(wine)은 라틴어 '비넘(vinum, 포도로 만든 술)'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확하다.
오늘은 4 개의 일정이 있는 아주 바쁜 날이다. 딸이 운전을 해주어야 할 정도이다. 마침 오늘 오후에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에서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박카스)를 이야기 할 차례이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술을 선물한 신이며, 또한 술의 기능을 상징하는 신이다. 인간에게 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답은 내일 아침에 해야 겠다.
나는 포도주/김상미
나는 포도주
햇볕과 바람과 비와 인간 속에서 저절로 익은 포도주
나를 마셔라
부드럽고 달콤새콤한 맛은 모두
고뇌의 흔적이 낳은 은총
눈물에든 웃음에든 맘껏 섞어 마셔라
태풍과 폭우와 욕망과 배덕의 식은 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익은 포도주
와서 나를 마셔라
돼지에게는 돼지의 맛
소에게는 소의 맛
나귀에게는 나귀의 맛
개에게는 개의 맛
인간에게는 인간의 맛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맛과도 교제한다
와서 맛보라
저절로 익은 것들은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따뜻하다
理想에 겁먹고 性에 굶주리고 향수에 시달린 이들이여,
서슴없이 와서 나를 맛보라
자연과 인간의 눈물이 죽도록 사랑해서 만들어놓은
十惡十善의 맛이 골고루 응축되어 있다
원하는 맛대로 나를 마셔라
저절로 익은 향기는 모두 에로스의 핏줄
상상할 수 없는 태고의 사랑이 내 속에 녹아 있다
마음껏 나를 마셔 나를 발견하고 나와 작별하라
나는 포도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커다란 축복
언제나 나는 그대들 속에
숙명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김상미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