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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컬트(cult) 와인 이야기

박한표 2022. 11. 23. 09:33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2021년 11월 20일)

오늘은 토요일로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지지난 주부터 우리는 미국 와인 여행을 하고 있다. 오늘은 미국와인의 대명사, <오퍼스 원(Opus One)>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시의 미국 와인이 저가의 대중 와인을 양산하고 있던 상황에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는 고급 와인을 추구했다. 그는 미국에 이민 온 입지전적인 이탈리아계 2세이다. 미국 와인을 세계에 널리 알린 미국 최고의 포도원 몬다비<Mondavi)는 주인 로버트 몬다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포도원(와이너리)이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통해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고급 와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1980년 프랑스 보르도의 샤또 무똥 로췰드(Château Mouton Rothschild)의 바롱 필립 드 로췰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와 로버트 몬다비는 역사적인 합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오퍼스 원(Opus One)>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1979년 최초로 포도를 수확했고 1983년부터 그들의 합작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 와인은 아마도 몬다비가 꿈꾸던 구세계 와인이 갖고 있는 전통과 신세계 와인의 기술이 만들어 낸 와인의 정수이다. 이 와인의 라벨 위쪽에는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와 프랑스의 바롱 필립 드 로췰드가 머리를 뒤로 맞대고 있으며, <오퍼스 원>은 라틴어로 ‘작품 1’이라는 뜻이다. 이 와인은 까베르네 쏘비뇽이 주 품종이며 약간의 까베르네 프랑, 말벡, 메를로가 섞여 있고 현재는 병당 125불 이상에 팔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랑스의 AOC를 모방해 1980년 AVA(American Viticulture Area, 미국포도재배지역)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127개 지역이 AVA로 지정돼 있는데 자연적인 기후 경계, 특정한 토양지역만을 나타낼 뿐 프랑스와 같이 산지별로 엄격한 생산조건을 규정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주로 프랑스 포도품종이 재배되는데, 진판델(Zinfandel)은 켈리포니아 고유 품종으로 미국 산 와인의 개성을 잘 나타낸다. 처음에는 대중적인 연한 로제 와인인 저그 와인용으로 만들어지다가 품종을 꾸준히 개량해 지금은 고급 레드와인용으로 쓰인다. 연한 로제 진판델 와인을 미국에서는 <화이트 진판델>이라고 부른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미국에서 <블러쉬(Blush) 와인>이라고도 부른다. 당시에 미국인들의 화이트와인 선호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달콤한 코카콜라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은 텁텁하고 묵직한 레드와인보다 달콤하고 과일 맛이 나는 <화이트 진탄델>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품종을 연구하고 개량한 결과 이 진판델은 대단히 뛰어나고 맛이 풍부한 레드와인을 만들어내는 품종이 되어 지금은 미국의 대표 품종이 되었다. 이 품종의 와인은 소비자의 입맛을 중시하는 미국 와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였던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도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으며, 미국인들은 독한 럼 대신에 와인을 마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제퍼슨의 이런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50여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일정으로 바쁜 하루이다. 우리는 1년 간 우리 마을 교통/주차 문제 해결을 위한 '리빙랩'-스마트한 신성동 골목길 프로젝트를 위한 주만 간담회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오전에는 우리마을 대학의 인문, 과학 그리고 예술 융합 토요학교 강의가 있다. 주민자치회는 통영으로 워크숍을 갔는데, 나는 참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 7시 반부터 줌으로 하는 <미학 세미나>도 벌써 3주 째이다. 우리는 마틴 제이의 <<눈의 폄하>>를 읽고 토론한다. 즐거운 영혼의 양식을 즐기는 시간이다.

이곳은 지금 단풍이 절정이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시간은 어디에나 흔적을 남긴다. 무심한듯 여울져 흐르는 시간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무늬를 만든다. 기억과 망각이 양화와 음화처럼  뒤섞인 기묘한 무늬를 만든다. 사람들은 그 무늬에 이름을 붙인다. 그것들이 기쁨, 슬픔, 행운, 불행, 달콤함, 쓰라림, 희만, 절망 등이다. 시간은 그 무늬 가운데 어떤 것은 돋을새김으로 더 뚜렷하게, 어떤 것은 스러지게(사라지게) 만든다. 지도조차 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가끔 누군가의 글은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나의 <인문 일기>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당시의 상황이 내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글은 편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누구를 향해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김재진

실패가 나를 눕게 했을 때
번민과 절망이 내 인생을
부러진 참나무처럼 쓰러지게 했을 때
날마다 걸려오던 전화
하나씩 줄어들다 다 끊기고
더 이상 내곁에
서 있기 힘들다며

아,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부터 돌아섰을 때
마음에 칼 하나 품고
길 위에 서라.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
이제는 어둡고 아무도
가는 사람 없는 길.

적막한 그 길에 혼자서
다시 가라.

돌아선 사람을 원망하는 어리석음
조용히 비워 버리고
가진 것 하나 없던
처음으로 돌아가라

마음의 분노 내려놓고 돌아보면
누구도 원망할 사람 없다.

원망은 스스로를 상처내는
자해일 뿐
가진 것 없던 만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빈 공간일수록
채울 것이 많듯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더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말.

주머니에 찌른 빈손 꺼내 희망을 붙잡으며
다시 시작하라.
조금씩 웃음소리 번지고
접혔던 마음 펴지기
시작할 때

품었던 칼 던져버리며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라.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떠올리며
한번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라.

이어서 미국의 컬트(cult) 와인 이야기 더하고 오늘의 <인문 일기>를 마친다. 컬트 와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 개념의 와인이다. 컬트 와인의 컬트는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컬트영화라고 하면 일반의 평가와 관계없이 소수 집단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영화를 말하듯이 컬트 와인도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되는 일반적인 와인과 달리 소량으로 생산된 품질 높은 와인이 특정 마니아들에게 일반적인 유통이 아닌 사전예약이나 경매 등을 통해 소비되는 와인을 말한다. 하지만 컬트영화가 비 상업적인데 반해 컬트 와인은 마치 골동품처럼 수집의 대상으로까지 간주되는 오히려 더 상업적인 와인이라 할 수 있다. 컬트 와인은 유명 영화 예술인, 경제인, 스포츠인, 패션디자이너 같은 사회적으로 명망과 경제력을 가진 와인 애호가들이 직접 와인 메이커가 되어보고자 포도원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와인을 하나의 예술품처럼 간주하면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최상의 토질을 가진 땅을 물색했고 당연히 그 비싼 땅을 소규모로 사들여 보다 집중적인 포도 생산관리를 하였다. 여기에 전통적인 방법, 예를 들어 프랑스 최고 품질의 참나무 숙성 오크통과 까베르네 쏘비뇽 포도품종을 사용하면서도, 그 시설은 초현대적으로 만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와인이 공식 석상에서 선보이게 되고 와인 비평가의 좋은 평점을 얻게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던 것이다.

컬트 와인의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을 비롯해 ‘콜긴(Colgin Cellars)’, ‘아라우호(Araujo)’, ‘할란(Harlan Estate)’, ‘헌드레드 에이커(Hundred Acre)’, ‘그레이스 패밀리(Grace Family)’, ‘젬스톤(Gemstone)’, 마야(Maya), 새퍼(Shafer), 브라이언트 페밀리(Bryant Family) 등이다.

부틱 와인 혹은 컬트 캡(캡-까베르네 쏘비뇽의 준말)으로도 불리는 컬트 와인들은 최고의 토양에서 최고의 기술과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최상급 와인으로 대개 100% 까베르네 쏘비뇽을 주 품종으로 만드는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와인이다.

‘포효하는 독수리’라는 뜻의 ‘스크리밍 이글’은 진 필립스(Jean Philips)가 만든 와인이다. 그는 20년간 나파 밸리에서 부동산업자로 활약하다가 그 자신이 실버베이크 트레일에 면한 오크빌의 55에이커 땅을 구입하고 최고의 재능을 가진 와인 메이커 하이디 피터슨 바레트를 고용하면서 새 역사를 창조하였다. 이 와인이 와인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면서 미국의 컬트 와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이름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바레트는 각 포도원의 포도와 거기에 어울리는 오크 배럴과의 매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양조법으로 특별한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매년 6천여 병이 생산되는 이 스크리밍 이글은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판매되는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5년 후에나 구입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헌드레드 에이커’의 제이슨 우드브리지는 캐나다 뱅쿠버 출신의 오일과 가스 재벌로 이 분야에서 돈을 가장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이다.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연환경까지 바꿀 정도의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젬스톤’의 폴과 수지 프랭크 부부는 LA의 보석업계에서 35년 간 터를 닦아온 부자들로 1992년 홀연히 엔시노의 저택을 팔고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나파 밸리에 왔다. 이러한 성공은 전 세계에 미국 와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을 정도의 사건이 되었다.

값비싼 와인을 구입하는 미국인들이 지난 5년 사이 현저하게 증가하면서 컬트 와인의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컬트 와인이 인기가 있는 것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즉 맛보다는 희귀성 때문이라는 비난이다. 또한 고급 레드 와인은 오래 숙성한 뒤의 결과를 보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있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컬트 와인의 인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나타나기 시작해 와인 비평가들의 찬사에 갑자기 유명해진 이 컬트 와인들은 순식간에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가격이 병당 100~200달러대로 뛰었는데 소규모로 생산되기 때문에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있는 소수의 고개들과 식당들에만 판매되고 있다. 따라서 이 와인들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어쩌다 경매에 등장할 때는 원래의 가격보다 2~6배에 팔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컬트 와인들을 구입한 사람들은 와인을 맛보려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고 있음을 자랑하거나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되팔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컬트 와인들이 유명세에 비해 맛에 대한 평가가 거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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