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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이탈리아 리구리아 와인

박한표 2021. 8. 23. 10:23

1726.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21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한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도록 요구한다.  이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나? 법륜 스님은 "관점을 바꿔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찌뿌둥하다고 누워 있으나, 들판에 나가 일을 하나 몇시간 뒤엔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젠 관점을 바꿔 볼 생각이다. 아프고 피곤한 몸을 수세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과감히 일어나 땀 흘림으로써 활력을 되찾는다는 생각으로, 나는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다만 다른 관점도 있다. 그러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사안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코로나도 '이를 어쩌나'라는 당황보다는 관점을 바꾸면 어떤 해답이 나온다. 산에 오르다가, '잘못 올라 왔다'며 '되돌아가자' 하게 되면, 되레 꼴찌가 유리해지기도 한다. 기존 질서에선, 먼저 간 사람이 늘 더 앞서고, 뒤처진 자는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화된 질서에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와도 무조건 낙담만 할 필요는 없다.

이젠 '잘살아 보세'식 성장론은 멈추어야 한다. 법륜 스님과 정토회 공동체 사람들은 우리 사회 최하층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며 나눔을 실천한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의 중간이 아닌, 지구인 가운데 평균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야 빈자와 약자의 눈높이를 맞춘 삶을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안식제도를 이용해 역자들이 다시 기회를 갖는 제도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의 희년(禧年) 제도(Jubilee) 같은 것을 말한다. 희년은 성경에 나오는 규정으로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말한다. 이 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유일신 야훼가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한다. 이 때가 되면 노예를 석방하고 매매했던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는 단어가 뜻하는 바 그대로, 현재의 가난과 고통이 대를 이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가난과 고통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없으니 차라리 세대를 잊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0%대의 출생률로 떨어졌다. 수치이다. 그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빨간 불이다.

법륜 스님은 '욕구단계론'을 말했다. 그는 욕구를 기본적 욕구, 상대적 욕구, 탐욕까지 셋으로 나눈다. "배고프면 먹고, 배움에 목마르면 교육받고, 아프면 치료받는 기본적인 욕구는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상대적인 욕구는 회사에서 벌어들인 총량이 같더라도 내가 남보다 좀 더 갖고 싶은 욕구이니, 이건 갈등을 두려워 말고 지속 가능성을 위해 타협하며 분배하면 된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조차 못 채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혼자 다 차지하겠다는 탐욕은 개인도 망치고 시화도 망친다. 그러니 개인은 절제해야 하고, 국가는 제도로써 이를 금지해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주장이 기억난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으로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다.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욕망으로 식탐이나 성적 욕망과 같은 감정들이다. 이런 것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절제하고, 제어해야 한다.
• 자연스럽지도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력(財力)이다.
우리는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쾌락은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 속의 걱정거리가 없는 상태"이다. 그에 따르면 고통과 근심의 원인은 자연스럽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걱정거리를 없애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개인적인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주 명리학에서는 인간 욕망의 범주를 '재색명리(財色名利)', 돈과 색 그리고 명예와 돈으로 보고 있다. 거기서 앞에서 말한 '재다신약' 팔자가 나온다. 이런 팔자를 가진 사람이 명을 오래 이어가려면, 책과 공부 그리고 호학지사(好學之士)를 가까이 하라고 한다. 호학(好學)이 자기 몸 약한 부분을 보강해 준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은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니, 여기서 멈춘다. 오늘 시는 정호승 시인의 것을 만난다.


빈 손의 의미/정호승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 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 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오늘은 이탈리아의 리구리아(Liguria) 지역 와인 여행을 한다. 나는 몇 해 전 아시아 최고의 와인 품평회인 <대전 아시아와인 트로피>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 지역의 와인을 만난 적 있다. 우선 이곳이 어디인가 지도를 공유한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피에몬테 남쪽에 발달되어 있는 와인 산지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바다를 끼고 위치한 북쪽의 마지막 지역으로 콜롬버스와 파가니니의 고향으로 유명한 주도인 제노바(Genova)와 18Km에 이르는 해안 절경지로 유명한 친퀘 테레(Cinque Terre)를 갖고 있으며, 서쪽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인 니스와 모로코를 접한 지역이다.

친퀘테레의 '친퀘(cinque)'는 '다섯'이라는 말이다. 프랑스어 5를 '생끄(cinq)'라 한다. '떼레(Terre)'는 '땅, 마을'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어로 'la terre(라 떼르)'에서 온 거다. 우리나라에서 '빠떼루'로 알려진 레슬링 경기 용어가 프랑스어로는 'par terre'이다. 그 뜻을 '바닥으로'란 말로 레슬링 경기에 벌칙을 줄 때 사용하는 말이다. TMI이다. '친퀘테레'는 이름 그대로 절벽 위에 세워진 다섯개의 마을이다. 굽이굽이 산등성이에 좁다란 계단식 포도밭이 휘감으며 이어지는 다섯 개 마을들의 공통점이라면 이어지는 가파른 절벽에 파스텔 색 집들이 층층이 모여 있다는 덤이다. 자세히 보면, 같은 색으로 칠해진 집이 하나도 없다. 바닷가와 면한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어업 활동을 해, 멀리 바다에 나가서도 쉽게 집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집마다 다른 색으로 칠했다는 거다. 그러나 술에 취해 귀가할 때 자기 집을 잘 찾기 위해서 다른 색으로 칠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마을마다 고유한 색을 가진 개성만점의 오색 마을이다. 이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중해의 거칠고 드센 바닷바람 탓에 친퀘테레의 유일한 농업은 포도재배 뿐이다. 워낙 가파른 경사 탓에 어떤 기계도 사용할 수 없는 깎아지른 절벽에 계단식 포도밭이 장관이다.  더욱이 이 계단식 경작지는 시멘트도 전혀 사용되지 않고, 돌을 쌓아 만든 담으로만 지지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는 적어도 200년 이상, 최소 2000명이 총동원되어 매일 일할 만큼의 노동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족한 물, 척박한 토양과 친퀘테레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져 어렵게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취임식 와인으로도 선택 받았다. 해풍을 머금은 포도로 만들어진 까닭에 친퀘테레의 화이트 와인은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리구리아 지역은 워낙 좁고 바다에 접한 경사지라 포도 수확량은 많지 않으며 약 75%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이 지역에는 DOCG는 없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다만 7개의 DOC 와인을 갖고 있으며, 주요 와인은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칸티나 친퀘테레(Cantina Cinque Terre)와 단맛이 있는 화이트 와인인 친퀘테레 시아케트라(Cinque Terra Sciacchetra) 등이다. 얯 지역의 와인들은 위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친퀘테레’는 교황 취임식 때 사용될 정도로 고품질의 신성한 와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간소한 식단과 더불어 와인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하는 와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칭퀘테레는 이탈리아 서쪽의 다섯 해안마을 몬테 그로소(Monte Grosso), 베르나짜(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를 뜻하며, 동시에 이 곳에서 나는 와인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칭퀘테레는 대한항공이 선정한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부문 1위, ‘사랑을 부르는 유럽’ 부분 6위에 선정된 바 있다. 한해 이 곳을 찾는 관광객만 200만 명이 넘는데, 칭퀘테레 와인은 이 곳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꼽힌다.

칭퀘테레 와인이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해산물과의 궁합 때문이다. 해안에 위치한 칭퀘테레에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는데, 이곳 와인 역시 해산물과 어울리는 섬세하고 신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칭퀘테레 와인은 그 명성에 비해 맛보기가 쉬운 와인은 아니다. 가파른 포도밭의 경사면 때문에 사람이 직접 포도를 따내는 수 밖에 없다. 워낙 손이 많이 갈뿐더러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이 넓지 않아 생산량도 한정적이다. 한해 전체 생산량은 20만병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칭퀘테레 주민들과 관광객들에 의해 거의 모든 양이 소진된다.


국내에는 깐띠나 칭퀘테레 DOC(Cantina Cinque Terre DOC)가 수입되고 있으며, 그랑크루급 빈야드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코스타(Costa) 시리즈와 교황이 사랑하는 와인으로 알려진 달콤한 디저트와인 샤케트라(Sciacchetra)와 샤케트라 리제르바(Sciacchetra Riserva) 등도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늘 읽어 볼 와인은 라 바이아 델 솔레의 '오로 디제'를 읽는다. 다음 사진이다.


(1) La Baia del Sole(라 바이아 델 솔레): 루니 항구가 있던 자리에 설립된 와이너리 이름이다. '태양이 비치는 만'이라는 뜻처럼, 이곳 포도는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2) Colli di luni(꼴리 디루니): 와인 산지이다. 루니 언덕이라는 말이다.
(3) ORO D'ISEE(오로 디제): 와인 이름이다. 우리말로 하면, '이제의 황금'이란 뜻의 화이트 와인이다. '이제'는 이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페데리치(Federici) 가족의 고조 할아버지 이름이란다. 이제 할아버지는 제일 좋은 포도로 만든 와인을 따러 보관해 두었다가 특별한 날에 가족과 마셨다고 한다. 고조할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이어받고 그를 기리고자 만든 와인이 '오로 디제'라 한다.

'오로 디제'는 베르멘티노(Vermentino)라는 이탈리아 토착품종으로 만든다. 잘 구운 대하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고 몇 번 씹다가 '오로 디제'를 한 모금 마시면 그 어울림이 맛깔스럽다. 통통하고 탄력 있는 대하의 질감이  이 와인의 무직함과 잘 어울리고,초고추장은 와인의 농익은 사과향과 조화를 이룬다. 와인의 여운, 피니쉬에서 느껴지는 꽃향과 허브향은 대하의 비릿한 뒷맛을 깔끔하게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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