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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박한표 2024. 11. 25. 09:24

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23일)

어제에 이어 우리들의 '기억' 이야기를 더 한다. "기억은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한소원)는 말을 할 차례이다. 한 교수는 기억을 암묵기억과 외현기억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 키보드의 자판을 보지 않고 타이핑 하는 것, 외우고 있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 등은 의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기억하는 일들이다. 이런 행동들이 암묵기억의 예시이다. 연속된 하나의 단위로 묶여서 이루어지므로 우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몸이 기억하게 된다.

이와 달리 의식적인 유형의 기억을 외현기억이라 한다. 이 외현기억은 다시 역사적 사실이나 물리학의 법칙과 같이 일반 지식과 관련된 기억을 말하는 의미기억과 스스로가 경험한 구체적인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기억을 말하는 일화기억으로 나눈다. 의미기억은 우리가 언제 배웠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그 지식을 알게 된 상황과 누군가 나에게 말해준 대화를 기억한다면 일화기억이 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억들은 장기 기억이지만, 몇 초 정도의 의식 속에 머무는 단기 기억도 있다. 이 단기 기억의 내용은 주위를 기울이고 반복하고 활용하면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짧은 시간 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대화를 할 때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다음에 내가 할 말을 계획한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도 이전에 앞 사람이 한 말을 생각 속에 담고 있어야 다음 말을 연결해서 할 수 있다. 다음에 할 말이나 움직임의 목록들을 담고 있으면서 현재 활동이나 대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단기 기억이다.

이렇듯 기억은 한 가지 체계가 아니다. 과거의 일을 모두 저장해 놓는 저장소가 뇌 안에 따로 존재하거나 정해진 것도 아니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와 내측 측두엽 같은 뇌의 영역을 기억의 과정을 지원하는 기관이지 기억을 쌓아 놓는 저장소는 아닌 것이다. 해마는 공간에 대한 기억과 일부 외현기억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치매로 고생하는 환자들은 오래된 일보다 최근의 일을 더 기억하기 어려워하곤 한다. 치매 초기에는 최근의 일을 잘 기억 못 하다가 치매가 심해지면서 오래 전의 기억까지도 서서히 감퇴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정보를 차곡차곡 저장하는 것을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뇌에는 기억하는 내용을 저장하기 위한 장소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역할이란 그저 불을 켜고 끄는 것 밖에 없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싼 반짝이는 작은 전구의 불을 켤 때처럼 불이 켜진 패턴이 뇌의 배선을 이루면서 연결망을 만든다. 뇌의 배선은 멀리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국지적으로 신경세포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연결의 조각들이 순간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기억의 기제이다. 즉 기억은 과거에 이루어진 연결망의 패턴을 현재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억은 현재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의 패턴이다. 그 연결망이 강화되어 있으면 다시 활성화 되는 것도 용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연결망을 강화 시키는 결과일 것만 같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뇌는 똑같은 자극이 되풀이되면 반응을 줄이는 특성이 있다. 흥미롭다. 그러니까 다양한 각도에서 연결망을 활성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 읽고, 쓰고, 말하고, 가르치고, 적용하는 다양한 활동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한 교수는, 기억력을 강화하려면, '다양한 연결망을 만든 것'과 동시에 '인출 연습'도 좋다고 권한다. 예컨대, 시험을 보는 거다.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과 출력하는 과정 모두에서 감각기관과 운동 기관의 다른 활성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효율적인 기억을 위해서는 환경을 이용해 인지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법도 권한다. 예컨대, 기억해야 할 것을 곧 바로 글로 써 놓는 것이다. 그 과정은 기억해야 할 내용을 환경에 덜어 놓아 과부하를 줄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감각 운동 기관의 경험을 통해 더 깊이 뇌에 저장한다는 효과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반복보다는 읽고, 쓰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등의 다양한 과정이 기억에 도움을 준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오래 걸린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변화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하면서 적응해가면 되는 일이다. 계속해서 뇌를 움직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뇌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좋은 연습이다. 스스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일 수록 기억의 뇌 기제를 더욱 크게 발달시킬 수 있다.
- 시를 외워서 낭독하는 것
- 새로운 노래를 배워서 부르는 것
- 새로운 춤동작을 배우며 스텝을 외워서 밟아 나가는 것
- 새로운 레시피에 따라서 요리를 하는 것
- 새로운 악기를 배워서 연주하는 것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응고화 하는 역할로 잘 알려져 있는 기억의 대표적인 영역이다. 특히 해마가 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관련된 일화 기억 또는 자서전적 기억이다. 그런 해마의 또 다른 역할이 공간지각이다. 해마는 실제로 공간에서 돌아다닐 때 위치에 따라 활성화되는 뇌의 GPS  세포를 포함하고 있다. 신체활동이 기억력을 향상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필요 이상으로 활동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예전보다 움직임이 능숙하지 않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다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활동을 줄인다면 노화를 더 촉진하고 뇌를 급격히 쇠퇴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한계와 변화를 보면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량이 적은 노인들에게 기억 뿐 아니라 추론, 눈과 손의 협력, 문제해결 능력 등 전반적인 인지 저하가 자주 나타난다. 체화된 인지의 관점에서 우리의 인지 능력과 지각 능력은 정적인 능력이 아니라, 환경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뛰어다니면서 환경에서 자라면 인지 기능이 발달하고 자기 통제감과 주체성이 발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인간의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배워 감에 따라 형태를 바꾸면서 더 크게 발달한다. 기억은 순서대로 재생되는 비디오 같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특정한 사건을 기억할 때 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감각 시스템, 인지 시스템에서 여러 가지의 패턴을 다시 소환하게 되는 데, 이때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뇌에서 경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위치와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 나이가 들수록 걷는 일이 뇌의 기능에 아주 좋다. 물론 걸어 다니면서 이리저리 동네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유산소 운동과 신체 활동은 뇌의 인지 기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뇌는 퇴화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20대와 똑같은 체력일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어도 근육은 얼마든지 발달 시킬 수 있고 뇌 또한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걷는다는 것은 뇌를 계속 자극하여 젊고 건강한 뇌를 만드는 과정이 되는 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엉덩이가 가벼워야 머리가 퇴화하지 않는다. 튼튼한 허벅지가 장수의 비결이다. 한 소원 교수도 최소한 하루에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권한다. 그렇지만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살짝 숨이 찰 만큼은 강도 있게 움직여야 한다. 피츠버그대학의 커크 에릭슨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장년층의 연구 참여자들이 6개월에서 1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중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했더니, 뇌에서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관여하는 해마의 부피가 2% 정도 증가했다는 거다. 이런 변화가 곧 뇌의 노화를 1~2년가량 되돌리는 격이라고 설명한다.

한소원 교수한테 많이 배웠다. 이젠 뇌과학에도 눈을 돌려야겠다.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우리의 뇌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기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뇌의 문제 해결 능력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틈나는 대로 걷는 나의 산책로이다. 그 곳이 나의 기도의 길이다. "오래된 기도".

오래된 기도/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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